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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휴지신

자휴지신 11장 녹의 鹿懿

by 란차 2021. 10. 18.


하안상은 얼굴이 좀 차갑게 느껴져 눈을 떴는데 곧바로 사정생의 얼굴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하고 계십니까."

사정생이 얼굴을 내밀고 웃으며 말했다.

"기분이 좋아서요."
하안상은 손가락을 들어 보았는데, 위의 먹물은 아직 젖어 있었다. 그는 또 사정생을 쳐다보았다. 사정생은 무고하다는 동작을 지어보였다.
하안상은 안색을 담담하게 하고 말했다.
"훌륭한 붓글씨를 여기에 남기는 것은 아깝습니다."
그가 평소처럼 쌀쌀해지자 사정생은 탄식하며 말했다.
"나도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허안상은 그의 말이 어느 정도 뜻이 있다고 느꼈지만 생각하기 귀찮았다. 품 속에서 면손수건을 꺼내 아무렇게나 닦으며 말했다.
"이 두루마리 속에 있는 것은 모두 하경력 손에 있는 난제인데, 한가하시면 한 번 보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사정생이 그를 보았는데 눈 아래가 벌써 새파랗게 질린 것을 보니, 요 이틀도 잘 쉬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지난날 사정생은 꼭 빈정거리며 말하였지만 오늘은 전혀 흥미가 없었다. 심지어는 속히 사건을 매듭지을 뜻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손을 먼저 뻗었다. 두루마리를 두세 개 뽑아 앞에 가져와서 4~5개 정도 보다가, 사정생은 갑자기 위에 있는 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을 알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안상은 이름을 보고 사정생이 준비해 온 것을 알았고, 다만 이렇게 말했다.
"그 날 밤 그가 서둘러 나섰을 거라 짐작했고, 이미 몇 가지 추측을 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이 최대 범행 동기와 우위가 있다고만 생각합니다."
사정생은 신문의 이름 아래 반복해서 손가락을 그으며 말했다.
"종친은 성상의 환심을 받아 궁중에 드나들며, 종인부와도 물론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진왕이 종인부를 장악하면서 한 명의 경력을 잃었는데, 성상이 이 사건에 결백을 고집하지 않으시는 한, 그 다음엔 누구도 경도의 소패왕小霸王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음, "하안상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지만 그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말만 무성할 뿐입니다. "
사정생은 탁상에 몸을 수인 채 허안상의 양쪽 의자 손잡이에 손을 얹고 하안상의 몸을 가두었다. 그러나 하안상은 이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몸도 피하지 않았다. 사정생은 그의 예쁘고 차가운 얼굴을 자세히 보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 날의 술에 취한 자태를 생각했고, 입은 단정하게 말했다.
" 증거는 아주 많지만, 그가 견디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그럼 일단 꺼내서 몇 근, 몇 냥인지 봅시다."
하안상의 눈동자는 보통 사람보다 색이 옅은 편이어서, 오래 들여다보면 더 정교한 미감이 생겼다."
사정생의 목구멍은 한 번 굴렀는데, 이미 입가에 다다랐던 증거가 갑자기 빙빙 돌더니 "보고 싶으면 교환해야 합니다. "로 변하였다.
하안상은 멍하게 '응?" 하는 소리에, 사정생은 마치 가슴이 그의 차가움에 희롱당한 것처럼, 타는 듯이 뜨거웠다. 그는 불길이 치솟아 온몸으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하안상은 눈치를 챈듯, 차갑게 말했다.
"사대인, 이 사건을 아직도 조사하십니까."
조사!
당연히 조사해야한다!
사정생은 숨을 급히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의 지척을 떠나, 탁상 너머로 물러나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다. 입술을 잡아당기고 웃고 있는데, 하필 하안상이 보기에 좀 독해보였다.
"증거를 보여 드리지요."
사정생은 그는 가지고 온 몇 축轴의 그림을 좌우로 펼치고, 말했다.
"모두 하경력이 가지고 있던 겁니다. 사람 머리 일곱이 아직 지나지 않았으니, 반드시 잘 지키셔야 합니다."
놀랍게도 모두 춘화였다. 그런데 감정情色을 모두 빼고 보니, 정말 섬세하고 유려한 화법이다. 특히 그 중의 여자는 귀밑머리云鬓 [각주:1]가 나른하고, 꽃같은 용모에 요염한 자태였는데, 눈썹 묘사가 매우 자세해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그림 속 여자는 모두 같은 인물이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하안상은 조용히 다 보고 말했다.
"한 사람이 쓴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하안상은 점차 눈을 감았고, 하경력의 이름과 휘를名讳를 말하였다.
"하욱何旭。"
""정5품 종인부의 경력은 평소에는 관복이 엄격하고 말소리에 구애받지 않으며, 필경은 모두 존지봉명(尊志封命)이고笔经都是些尊旨封命 밤에는 침상의 그림床榻之画을 좋아하며 방탕하다."
사정생은 입술을 휘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만약 그가 이미 죽지 않았으면, 그림 그리는 솜씨가 정확했을텐데, 그 친구와 사귈 수 밖에 없었을겁니다. 하경력과 고개만 끄덕이기만 했는데, 그렇지않습니까?"
"나는 그와 서로 안면이 있지만,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안상은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그림 속 여자를 찾으려고요?"
"맞습니다."
사정생이 그릠을 말아넣으며 말했다.
"하욱의 방에 꼭꼭 숨겨진 그림이 모두 이 여자인데, 그의 환심을 사기는 하지만 세상에 나오기 어려운 여자라서 숨겨야했을겁니다. 당연히, 집에 미인을 감춰둔것金屋藏娇 [각주:2]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여자는 분명히 무언가 알고 있을 겁니다."
"확신하시는군요."
사정생이 그를 향해 웃으면서, 또 3가지 사기邪气를 고르며 말했다.

"만약 그런 종류의 풍치风情라면, 저도 반드시 비밀을 다 이야기 하지요. 영웅도 미인계美人关를 견디지 못하고, 나같은 영웅재준英雄才俊[각주:3]도 견디지 못하는데, 하물며 문약한 서생은 말할 것도 없지요."

하안상은 직접 그의 앞 구절을 무시하면서, 말했다.
"그의 방에 숨겨진 그림을 모두 손에 넣은 이상, 사람을 찾는게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사정생은 탁상 위에 앉아서 어쩔 수 없이 족자를 던지며 말했다.

"이러한 도리인데, 그런데 마침 이 곳은 혼자 가기엔 너무 불편하군요."하안상은 손을 들어 차를 한잔 따르고는 말했다."경도가 이렇게 큰데, 사대인이 수줍어하는娇羞 곳이 있습니까.""그건 당신이 모르시는겁니다. "사정생은 족자를 받아 탁상머리에 있는 도자기병에 꽂아넣으면서, 말했다. "대문이 넓은 곳일수록, 길가의 잡초를 더 많이 볼 수 있지요. 나는 원래 미인이라서, 이 곳은 정말 발을 들여보지 못했습니다. 함께 걷다 보면, 하대인을 도와서 고기요리를 해줄지도 모르잖습니까?"하안상은 차를 마시고나니, 속이 텅비고 차가워서, 무의식중에 참기가 어려웠다. 말이 이쯤되자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 하안상은 경도의 화류 거리花街를 생각해 본적이 있었지만, 이 곳이 녹의산鹿懿山 중턱 경화암镜花庵에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 경화암은 복욱황후

福煜皇后가 불교를 부흥시켜 지은 비구니 암자로, 근년에는 비록 쇠퇴하였지만 여전히 황실이 식량을 고양하는 곳이다. 생각지도 못했다.

사정생과 그는 모두 금포를 입고 손에는 단지 짙은 단향목 부채를 더해, 풍랑이 심했다.浪得很. 그를 보고는 모처럼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머리를 숙여 그 귓가에 대고 말했다.
"과연, 역시 들어가기 불편하고, 자극적이지 않습니까?"
"불문중지佛门重地." [각주:4]
하안상은 그의 기댄 머리를 짚으며 천천히 말했다.
"방종하게 굴지 마세요. 你不要浪。"
사정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죠."
앞으로 나가 문을 두드리자, 그 문이 열리고, 온화한 얼굴의 늙은 여승老尼이 나왔다.

"시주老尼."
늙은 여승이 살짝 합례를 하고는 말했다.
"무슨 소원을 빌러 오셨습니까?"
"아니요. 소생在下은 향을 따라 도화길을 찾으러 왔는데, 신선불문神仙佛门이 열리지 않는지 몰랐습니다."
늙은 여승은 여전히 자애로운 얼굴을 하고, 심지어 한가닥 웃음기를 보이며 말했다.
"공자같은 신선하고 준아한 인물은 부처님전에도 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몸을 약간 기울이고, 안내하며 말했다.
"공자님 가시지요. "

사정생은 합선合扇하고 웃으면서, 하안상과 함께 암자로 들어갔다. 안쪽의 단풍나무는 아늑하고 꽃길이 우아했으며,
범향梵香은 코밑으로 얕게 파고 들어가서, 가는 내내 그윽하고 으슥하여 일말의 단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일월동문一月洞门을 뚫고 들어가면, 경치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가운데는 울창하고 큰 불정주佛顶珠 [각주:5]가 있었는데, 비록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꽃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뜰의 온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그네를 세워서, 두명의 작은 여승小尼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작은 여승은 늙은 여성이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도 겁을 내지 않고, 오히려 사정생과 하안상을 훑어 보았다.

"오늘 사부님의 운이 좋으셔서, 신선 공자 두분을 마중 나오셨네요."
그네秋千에 앉아 흔들리는 작은 여승의 눈매는 맑고 고왔지만, 어린 나이에 벌써 경망스러운 것이 옥의 티였다. 하안상이 냉랭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사귀기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오직 사정생에게만 화가애애하게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 낯이 익으세요."
사정생은 턱을 두드리며, 웃으며 말했다.
"불문은 들어가기 어려워서, 늦게 왔구나."
이 소니小尼는 빙긋 웃는데, 노니老尼가 말했다.
"유독 네가 말이 많구나."
사정생에게로 돌아서서 말했다.
"공자는 귀인의 신임을 얻으신 셈인데, 누구를 골라둔 사람이 있으십니까?"
"사태师太는 소생이 난처합니다. 모두 꽃같은 가족들이니, 정말 고르기 어렵습니다."
사정생은 주저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묘선, 묘은 두 분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 노니는 묘은의 이름을 듣고 어리둥절해서 한참 후에야 비로소 말했다.
"공자는 몰라도, 둘 다 암자에서 빼어난 미색이고, 기개가 높으니, 공자가 모시고 싶다면…빈니贫尼가 물어보겠습니다."
사정생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그녀의 손에 금 몇 덩이를 놓아 주었다. 발걸음이 빨라져서 위층으로 올라가 물었다. 소니는 가끔 사정생을 힐끗 쳐다보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하안상도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부채로 입과 코를 가린 채, 하안상에게 말했다.
"이건 모두 형제의 공로이지,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응?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형세“形势가 필요하군요."
사정생은 그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하안상은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보니 노니가 급히 계단을 내려와 두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각주:6]
말했다.
"공자께서 빈니를 따라 오시지요. 묘선묘은이 몸치장을 하고 올겁니다."
두 사람은 옆 마당으로 안내되어, 방으로 올라갔다.그 안에는 비단 장막과 향긋한 비단 휘장, 거문고 탁자, 큰 누각 침상 등이 같은 것이 적지 않았다. 하안상은 이 향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고 속이 더 불편했다. 제단 앞에만 앉았을 뿐 분향정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사정생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의 곁에 앉았다. 노니는 공자님, 천천히 즐기시라고 말하고 물러갔다.
오래지 않아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는 소리를 듣고 열어젖히자마자 가벼운 홑옷을 입고 미소를 띤 여자가 나타났다. 피부는 하얗고 보들보들했으며 눈매는 휘어져있었다. 목소리는 가장 절묘했고 입을 열면 사람의 뼈가 녹아들었다.
"묘선이 늦어 공자님의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미인을 기다리는 것은 꿀에 신맛을 묻히는 것과 같지요, 마침 딱 좋습니다. "
사정생은 웃으며 말했다.
"여기 묘선 아가씨가 오지 않았습니까. 아주 달콤합니다."[각주:7]

묘선은 웃음을 가리며 하안상의 옆으로 다가섰다.
"공자의 말씀이야말로 사람을 달게 하십니다." 라고 말하면서 하안상을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옆에 앉아도 감히 건방지게 굴지 못하는데, 이 분 공자님은 보기만 해도 정말 좋은 분이시군요."
사정생은 껄껄 웃으며 허안상에게 어깨걸이를 하며 말했다.
"안목이 좋습니다. 이 사람은 경도에게 가장 엄숙한 사람입니다. 진지하다는 말은 일단 그가 입을 열면 그리 진지 하지 않다는 말이지요."
하안상은 그에게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사람을 치지 않고 문을 또 두드렸다. 두 사람의 시선은 함께 돌아갔는데, 문틈으로 여인의 고운 얼굴이 비치고, 비단처럼 머리결이 나부꼈고, 눈은 가을물결을 머금었다.
자신의 눈가를 쓰다듬기만 해도 예쁘기 그지없다.

주인이 왔다. 正主来了。










  1. 운빈. 여성의 탐스러운 귀밑머리. 구름같이 드리운 귀밑머리. [본문으로]
  2. 훌륭한 집에 미인을 감추어 두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다. 첩을 들이다. (=藏娇, 金屋贮娇) [본문으로]
  3. 才俊재능이 뛰어난 사람. (=才畯) [본문으로]
  4. 佛门불문(佛門). 불가(佛家).승려 重地중지. 중요한 곳. 요해처. 요(충)지. [본문으로]

  5. 顶珠. 청대(淸代) 관리의 관모의 꼭대기에 붙여서 등급을 나타내는 구슬. [본문으로]

  6. 对两人多了份热拢 뜨겁게 말하는게 뭘까요.. 대충 의역이라 원문을 달아놓습니다. [본문으로]
  7. 这不就来了妙善姑娘,甜得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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